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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리타 는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중요하다. 통속한 스토리와 슬렁슬렁 건너뛰는 전개 방식에도 이 영화가 주는 매혹의 질감은 애니메이션의 그림체와 움직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치코와 리타 두 남녀 주인공이 하룻밤 연인 관계에서 평생을 두고 인연의 끈을 맺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는 그날, 리타가 벗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 방금 떠오른 악상을 피아노로 치고 있는 치코에게 다가가는 초반 장면에서 어떤 관객은 이 매혹적인 그림자놀이에 금방 항복하고 싶어질 것이다. 스르르 미끄러지는 듯한 주인공들의 움직임에 실리는 재즈의 초현실적인 운율이 주는 감흥이 숱한 노랫말들이 읊조리는 감상적인 사랑 타령의 절실함과 결핍감과 갈구와 경험하기 쉽지 않은 환상의 유토피아를 자연스레 그려내기 때문이다. 실제 인물의.. 더보기
원스 어게인 그와 그녀는 사랑 앞에서 머뭇거린다. 남자는 과거의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여자는 앳된 얼굴이 무색하게 아이가 있는데다 고향 체코엔 별거 중인 남편이 있다.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음악으로 감정을 나눴지만 서로 사랑할 수는 없는 사이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면서도 둘은 상대방을 원한다. 그들이 입을 맞춰 부르는 ‘Falling Slowly’의 가사 첫 구절은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그래서 더욱 애절한 두 사람의 연심을 드러낸다. ‘나는 당신을 모르지만 당신을 원합니다...(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어쩌면 사랑은 서로를 잘 몰랐을 때 더 간절한 것인지 모른다. 빈곤한 삶을 음악으로 버텨내는 남녀의 사연을 그린 (2007)는 그렇게 사랑의 설렘을 아름.. 더보기
오프 비트 취리히에 사는 스물여섯 래퍼 루카스는 음악가가 되려는 꿈도, 랩에 대한 열정도 시들해졌다. 정착해서 살기보다는 떠도는 삶이 어울리는 루카스는 동성애 파트너이자 소속사 대표인 마흔여섯 살 미샤의 아파트에서 미샤가 애지중지하는 대마초를 재배하며 마약에 빠져 있다. 마약에 전 상태로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루카스를 부끄러워하는 그의 동생 사미. 사미는 열여섯 살의 열정적인 래퍼다. 미샤는 마약 때문에 걸핏하면 공연을 망치는 루카스의 태도에 진저리를 내고 10년 동안 이어온 둘 사이의 관계에도 종지부를 찍는 한편, 동생 사미를 끌어들여 밴드와 공연을 이어가려고 한다. 미샤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돈이 필요해져 음란한 랩도 녹음해보고, 거리에서 무가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여전히 밑바닥에 머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