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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그램/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

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


영화는 시작과 더불어 어두운 복도를 따라 무대 뒤편으로 찾아 들어간다. 멀리서 몇 명의 사람들이 서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그 무리 한가운데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도 닿지 않는 작은 키의 누군가가 보조 보행기에 의존하여 서 있다.

미셸 페트루치아니(1962~1999). 선천성 골형성부전증 환자. 하지만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자, 피아노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연주를 들려준 인물. 카메라가 그에게 가까이 가자 그는 환한 미소로 카메라를 마주 보며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한다. 그때 이미 당신의 귀에는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9월 2일(September Second)‘의 가슴 뛰는 강렬한 전주가 귀에 꽂히고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인물의 성별, 국적, 인종, 학력 등은 전부편견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기 쉽다. 신체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페트루치아니에게 쏟아진 그 수많은 찬사들을 그의 신체적 장애와 결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찬사는 어떠한 고려나 양해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하게, 그는 가장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가장 경이로운 연주가였으니. 그럼에도 그가 연주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가슴 높이 위로 올라온 88개의 건반 위를 자유로이 오가기 위해 좌우로 상체를 크게 움직이는 모습. 그러면서도 놀랍도록 빠르고 정확하며 심지어 강렬한 그의 손놀림. 멀찌감치 떨어진 발과 페달 사이를 연결해주는 그만의 독특한 보조 장치. 마치 자신의 마지막 연주인 양 온몸이 부숴져라 열연을 펼치는 동안 그의 온몸을 적시며 떨어지는 땀방울들. 그 모습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그의 음악과 결합할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 그리고 강렬하다 못해 잔혹한 생명의 힘이다. 어떻게 그것을 외면할 수 있을까. 이미 페트루치아니에 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필자가 아는 한 그렇다)가 나왔음에도 <일 포스티노>로 우리에게 유명한 마이클 래드포드가 그를 위한 또 한 편의 영상물을 만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래드포드의 <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2011) 이전에 만들어진 페트루치아니의 다큐멘터리는 프랑크 카센티 감독의 <미셸 페트루치아니에게 보내는 편지>(1983)와 호거 빌렘센 감독의 <미셸 페트루치아니와의 논스톱 여행>(1995)이다. 그런데 래드포드 감독은 앞선 두 편의 영화를 모두 자신의 새로운 영화를 위한 재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이 두 영화의 장면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더 많은 연주 영상을 수집하고 페트루치아니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담음으로써 그야말로 이 천재 피아니스트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비로소 완성했다. 단적으로 말해 페트루치아니를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전체적으로 조망한 다큐멘터리는 래드포드의 작품이 유일하다. 그러므로 래드포드의 시각은 선천적인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부단한 노력 끝에 완성된 천재가 되어 프랑스 무대를 거쳐 1985년 미국 무대에 진출하자마자 최고의 피아니스트 반열에 오르는 그의 성공 스토리에 멈추지 않는다. 카메라는 뜻밖에도 그를 지탱한 천진한 유머와 장난기는 물론이고 왕성한 여성 편력으로 그가 거친 네 명의 여인들을 중요한 화자로 삼았으며, 심지어 세 번째 여인 마리 로레에게서 태어나 미셸의 병을 대물림한 그의 아들(그 역시 기타리스트다)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도 담았다.

이토록 복잡했던 그의 삶에서도 그가 37년의 생애를 거침없이 돌파하며 보석 같은 명연주들을 쏟아낼 수 있게 한 것은 자신마저도 완전연소시킨 그의 에너지였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건반 위에서 경이롭게 움직이는 그의 두 손이며 그 두 손이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들이다. 그 소리는 진정 눈으로 봐야 한다.


Writer 황덕호 (KBS  1FM <재즈수첩> 진행자)
마리끌레르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