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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그램/내 사랑, 세르쥬 갱스부르

내 사랑, 세르쥬 갱스부르


프랑스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세르주 갱스부르는 사실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은인물이다. 갱스부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인물이 별로라는 것, 구질구질하다는 것, 그런데도 데카당트한 분위기 때문인지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 사진에서는 늘 지탄담배를 질겅질겅 씹듯이 물고 있다는 것 등등이다. 세 번째 부인 제인 버킨과 부른 ‘Je T’aime.. Moi Non Plus(사랑해, 난 더 이상 아냐)’의 그 헉헉거리던 신음 때문에 전 세계 사춘기 남학생들의 몽정을 유발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에피소드도 그를 기억하게 하는 한 요소다.

갱스부르는 한마디로 자유인이었다. 대단한 음악가였고 초절정 인기를 구가한 대중가수였지만 노래만으로 기억됐다면 세대를 뛰어넘는 인물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서는 자유혼에 대한 끝없는 의지, 예술적 가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향이 읽힌다. 세상이 첨단 대중 소비 사회의 진창으로 빠져들기 전, 인간에게 개성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그 같은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세르주 갱스부르다. 
우리에게는 낯선 조안 스파르 감독의 <내 사랑, 세르쥬 갱스부르>는 갱스부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영화라기보다는 갱스부르가 살았던 시대, 그가 살아가려고 했던 시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작품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잃었다고 스파르 감독은 얘기한다. 그래서 그 시대를 되찾기 위해서는 갱스부르에 대한 애정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일대기나 전기의 흐름을 좇아간다. 나치 시절 가슴에 노란색 별 표식을 달고 다녔던 소년 갱스부르가 어떻게 당대 최고의 가수로 성장해가는지를 비교적 편년체의 어법으로 그려나간다. 스파르 감독은 그러나, 갱스부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 그의 음악에 별반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신세대 관객을 위해 단순한 전기물의 도식을 해체하려 노력한다. 

영화는 중간 중간 플래시백을 통해 계속 소년 갱스부르의 의식 속 판타지의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유명 작곡가가 되고 나서도, 위대한 가수로 인정받은 이후에도 갱스부르를 지배한 건 무엇이었을지 묻는다. 영화가 갱스부르의 리비도를 들추는 건 그 때문이다. 예술은 강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욕망을 발산하거나 억압하거나 그 둘 다의 경계 어디쯤에선가 사람들은 예술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그 지점을 포착하기가 어려운데, 예술가가 되느냐 마느냐는 바로 거기에서 갈린다. 스파르 감독이 보기에 갱스부르는 의도적이고 연속적인 일탈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의 예술혼을 자극하고 일깨우려 했던 인물이다. 어쨌든, 관객으로서는 그 파격의 과정을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내 사랑, 세르쥬 갱스부르>를 보고 있으면 왕성한 성욕이 느껴진다. 근데 그건 그리 불쾌한 일이 아니다.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과 같다.

영화는 갱스부르가 ‘저질렀던’ 많은 여성들과의 연애담에 주력한다. 쥘리에트 그레코와 프랑스 갈, 브리지트 바르도, 그리고 제인 버킨 등등. 갱스부르가 그녀들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의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갱스부르가 관능의 여신이라 불렀던 브리지트 바르도와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이리저리 뒹굴며 노래를 만드는 장면은 지금껏 영화란 매체가 만들어낸 어떤 섹스 신보다 자극적이다. 그래서 진부하지만, 한편으론 늘 새로운 정의를 떠올리게 된다. 곧 사랑 없이는 예술은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불륜이든 타락이든, 좀처럼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도덕률도 다소 부차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세상이 모두 획일화되고 있을 때,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갱스부르 같은 인물은 마구잡이식 연애와 섹스, 사랑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내 사랑, 세르쥬 갱스부르>는 갱스부르와 그의 음악을 칭송하는 척 세상이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하고 딱딱한 금기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제를 밀어붙인다. 2시간을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사람들이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 사랑 갱스부르, 갱스부르 내 사랑.


Writer 오동진(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리끌레르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