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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그램/구스타프 말러의 황혼

구스타프 말러의 황혼


음악사상 구스타프 말러와 알마 말러만큼 많은 화제를 뿌린 커플도 보기 드물 것이다. 특히 세기말의 비엔나에서 사교계의 꽃으로 군림하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극장 감독 막스 버카르트, 작곡가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 등과 염문을 뿌렸던 알마 말러가 열여덟 살이나 많은 말러와 결혼한 것 자체가 이미 화제였다. 하지만 쳄린스키에게 작곡을 배워 결혼 전에 1백여 편의 가곡을 만들었던 알마는 말러와 결혼하면서 작곡을 그만둔다. 말러는 ‘동료가 아닌 아내가 필요하다’며 그녀가 작곡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거기에 다섯 살이던 첫딸이 죽자 알마는 더욱 상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알마는 다섯 살 연하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사랑에 빠지고 말러와 알마의 관계는 악화된다. 결국 9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말러가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은 파국을 피했지만, 이후 알마의 삶은 바우하우스의 창시자 그로피우스와의 결혼과 이혼, 표현주의 화가인 오스카 코코슈카와의 염문,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프란츠 베르펠과의 결혼과 사별 등 숱한 스캔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감독 퍼시 애들론은 아들 펠릭스 애들론과 함께 이런 말러와 알마의 사랑 이야기를 재창조해냈다. 애들론 부자는 우선 그로피우스와 사랑에 빠진 알마를 질투하는 말러가 정신분석학자 지크프리트 프로이트에게 상담을 받는다는 설정으로 영화를 풀어나간다. 음악과 심리학의 두 거물의 만남은 순탄치 않아 변덕스러운 신경전과 유머 넘치는 화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말러의 내면으로 다가서고, 한편 말러의 여동생 유스티스와 알마의 어머니 안나 몰 쉰들러는 영화 속 화자로 등장해 관객에게 두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러와 알마의 만남과 불화, 아이의 죽음과 음악에 대한 열정 등 두 예술가의 극단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매력은 우선 말러 역을 맡은 배우 요한네스 질버슈나이더와 알마 역을 맡은 바바라 로마너의 뛰어난 연기를 꼽을 수 있다. 질투의 고통에 허덕이면서도 아내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복잡한 성격의 말러와 남편이 금지시킨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어린 딸의 죽음으로 연하남 그로피우스와의 사랑으로 전이되고, 그러면서도 남편을 포기하지 않는, 역시 복잡한 성격의 알마라는 배역은 웬만한 내공의 연기자가 아니고는 소화해낼 수 없는 연기다. 또 호숫가에 자리한 말러 집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은 마음이 탁 트이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편 아버지가 오페라 가수여서 그런지 퍼시 애들론 감독은 오페라 극장에 대한 섬세한 묘사 등 세부적인 표현을 치밀하게 풀어내고 있고, 고증을 거친 의상과 각종 소품 역시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다. 말러의 음악은 마에스트로 에사-페카 살로넨이 지휘하는 스웨덴 방송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교향곡 10번과 교향곡 4번, 교향곡 5번이 사용되었는데, 세기말을 온몸으로 표현한 작곡가 말러의 만년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아름답고 강렬한 영상과 말러 특유의 염세적인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가들의 타 들어가는 사랑과 그 잿더미까지, 뛰어난 연출력으로 온전히 담아낸 작품이다.

Writer 전진수(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

마리끌레르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