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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그램/오프 비트

오프 비트


취리히에 사는 스물여섯 래퍼 루카스는 음악가가 되려는 꿈도, 랩에 대한 열정도 시들해졌다. 정착해서 살기보다는 떠도는 삶이 어울리는 루카스는 동성애 파트너이자 소속사 대표인 마흔여섯 살 미샤의 아파트에서 미샤가 애지중지하는 대마초를 재배하며 마약에 빠져 있다. 마약에 전 상태로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루카스를 부끄러워하는 그의 동생 사미. 사미는 열여섯 살의 열정적인 래퍼다. 미샤는 마약 때문에 걸핏하면 공연을 망치는 루카스의 태도에 진저리를 내고 10년 동안 이어온 둘 사이의 관계에도 종지부를 찍는 한편, 동생 사미를 끌어들여 밴드와 공연을 이어가려고 한다. 미샤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돈이 필요해져 음란한 랩도 녹음해보고, 거리에서 무가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여전히 밑바닥에 머물러 있다. 한편 미샤가 사미를 자신의 자리에 앉히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루카스는 질투심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지도 모르는 동생의 인생을 걱정한다.

자신은 아무런 반성 없이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동생이 그런 길로 접어드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루카스는 동생과 한 무대에서 랩으로 서로를 비난하다 결국 쫓겨나고, 질투 때문에 연인이었던 미샤의 치부를 드러내는 랩을 만들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면서 서서히 파국으로 향한다. 루카스는 미샤가 아끼는 대마초 화분을 모두 깨뜨려버리고, 그것이 사미의 짓이라고 생각한 미샤는 사미를 폭행하고, 성적인 수치심까지 안긴다. 충격을 받은 사미는 미샤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고, 형제는 서먹하나마 관계를 조금씩 회복한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던 미샤에 맞서며 완전히 회복되고, 결국 루카스와 사미는 호흡을 맞추어 함께 랩을 부른다.

<오프 비트>는 힙합과 음악 산업에 관한 영화이고, 스위스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형제애, 우정,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직설적이고, 어두우며, 다이내믹한 영상은 이런 주제를 더욱 잘 표현한다.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얀 가스만 감독의 전력은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자연조명을 최대한 살린다든지 핸드 헬드 카메라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방황하는 젊은 래퍼들의 심리를 나타내며 다큐멘터리의 느낌도 잘 살렸다. 한편 래퍼들을 비롯한 비전문 배우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극중인물과 그들의 실제 모습이 겹쳐지게 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특히 주인공 루카스 역할을 맡은 한스-야콥 뮐르탈러가 만들고 소화한 랩은 단순히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음악이라는 소극적인 표현 수단이 아니라 영화의 내용과 형제의 심리를 나타내는 적극적인 표현 수단이 되고 있다.

형제인 루카스와 사미가 함께 무대에서 랩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장면이나, 루카스가 미샤를 비난하는 원색적인 내용의 랩은 그 증거일 것이다. 루카스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까지 보여준 한스-야콥 뮐르탈러는 ‘장-자크’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자신이 이끄는 공동 창작집단 ‘문다르티스텐 그룹’과 함께 이미 스위스를 대표하는 래퍼이자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그는 얀 가스만 감독과 절친한 사이로 가스만 감독의 다른 작품에도 주요 배역을 맡아 출연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루카스의 래퍼 그룹 이름인 ‘가짜 친구들’이라는 표현처럼, 이들 취리히의 청춘들은 방황하고, 상처받고, 희망을 잃어버린 채 타락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얀 가스만 감독은 그런 그들에게도 가족의 정은 남아 있고, 음악으로 청춘의 아픔을 승화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 듯하다.

Writer 전진수(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
마리끌레르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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