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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그램/메르세데스 소사 칸토라

메르세데스 소사 : 칸토라


아르헨티나의 로드리고 비라 감독이 만든 <메르세데스 소사: 칸토라>는 아르헨티나를, 그리고 남미 전체를 대표했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동명 유작 앨범의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1935년 태어나 열다섯 살 때 가수가 된 이후200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란만장한 음악 인생을 살았던 메르세데스 소사는 어쩌면 존재 자체가 ‘한 편의 영화’라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1960년대 아르헨티나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누에보 칸시오네로(Nuevo Cancionero) 선언에 참가하며 인간에 중심을 둔 전통음악, 끊임없이 변화하며 재창조되는 전통음악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며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노래꾼으로 인정받았지만, 군부독재 정권 아래 고통받는 민중에게 위안과 희망을 안겨준 그녀의 노래는 위정자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던 소사는 체포와 석방을 거듭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1979년 3년 동안 유럽으로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스페인과 프랑스를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월드뮤직의 스타로 떠올라 부와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놓지 못하고 부와 명성을 다 뒤로하고 1982년 독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그 심장부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페라 극장에서 목숨을 건 귀국 공연을 열기도 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그녀는 아르헨티나를 넘어서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활동 무대를 넓혀 자신의 노래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상관하지 않고 달려갔고, “라틴아메리카가 노래를 한다면 메르세데스 소사의 목소리를 가졌을 것이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나 찬사와 별개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공연이 끝나고 난 뒤 혼자가 될 때 느끼는 고독을 몹시 싫어했다. 두 번의 결혼생활은 모두 불행하게 끝을 맺었고, 독재정권의 탄압과 불안한 망명 생활로 큰 병에 결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 소사는 그런 고독과 불행을 이겨냈고, 자신에게 사랑을 보내주는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노래했다. 
 
특히 2009년 발표한 마지막 앨범 <Cantora>에서 소사는 마치 자신의 음악 인생을 총정리라도 하려는 듯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의 유명 뮤지션들을 초청해서 듀엣으로 연주하는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로드리고 비라 감독은 1년이 넘은 음반 제작 기간 동안 이들 뮤지션의 만남, 녹음 장면,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인터뷰를 담아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영화 <그녀에게>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브라질의 거장 카에타누 벨로주, 아르헨티나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피토 파에즈, 스페인의 음유시인 호아킨 사비나와 후안 마뉴엘 세라 등 월드뮤직 팬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음반과 영화 제작에 기꺼이 참여하여 메르세데스 소사의 사람됨됨이와 그녀의 음악세계에 대해 존경과 사랑을 담아 증언하고 있어 흥미를 더해준다. 메르세데스소사의 음악이 지금까지도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는 것은 그녀가 독재 정권에 맞서 음악으로 저항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늘 겸손하게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점이고, 어떤 공연에서나 ‘진심’을 담아서 노래했다는 사실이다.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서 앉아서 노래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서글픈 감정을 자아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모습에서 오히려 머리가 절로 숙여지는 것 또한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감동이고, 그녀가 왜 ‘인류의 목소리’ ‘아메리카의 어머니’라고 불렸는지 알게 해준다. 영화 속에서 비센티코라는 가수가 말했듯이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성은 ‘영원히 존재해왔던 것 같고,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목소리’였고, 이 다큐멘터리가 단순히 ‘한 가수의 초상’을 넘어서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Writer 전진수(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
마리끌레르 2월호